영웅과 반역자, 상반된 평가를 받는 필리프 페탱

1916년 베르됭 전투가 끝날 무렵, 프랑스의 니벨 장군은 새로운 공세를 계획했으나 1917년 4월의 공세는 실패로 돌아가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프랑스군의 사기는 저하되었고, 병사들의 항명이 이어졌다. 필리프 페탱 장군은 이러한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병사들의 불만을 이해하고 직접 방문하여 소통하며 상황을 안정시켰다.

 

1918년 독일군의 공세에 맞서 프랑스군은 미군의 지원을 기다리며 방어에 성공했으나, 페탱은 후임 포슈 원수에게 자리를 내주고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프랑스는 패전 위기에 처하자 다시 페탱을 총리로 임명했다. 그는 나치와 협력하여 비시 정부를 구성하고, 반역자로 전락하게 된다.

 

전후 페탱은 반역죄로 기소되었으나, 그의 옹호론자들도 존재했다. 재판부는 결국 사형을 선고했으나, 그의 나이와 과거 공적을 고려해 종신형으로 감형했다. 

 

페탱은 영웅과 반역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으며, 지금도 영화 '영광의 길'을 통해 논쟁의 중심에 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의 기득권자들이 위기에서 책임을 회피한 모습이 드러났다. 

 

특정인의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만, 그들의 복잡한 삶과 고뇌를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메시지를 남긴다.